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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돌아온다!] 옮긴이의 글: 무명씨들의 귀환



 대중이 돌아온다!


옮긴이의 글: 무명씨들의 귀환

번역하는 책에 등장하는 영화 정도는 챙겨보는 것이 역자의 올바른 자세라는 핑계로, 나는 본문에서 잠시 언급되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1939)를 아직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동네 DVD 대여점에서 빌려보았다. 미국 정치와 언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개봉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이 작품에는 논할 거리가 많지만 본서와 관련해 인상 깊었던 장면을 하나만 꼽아보자면 이렇다. 부푼 꿈을 안고 정치를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워싱턴에 왔다가 기자들의 체계적인 왜곡보도에 타격을 입고 격노한 스미스 씨는, “모든 사실을 비틀고 웃음거리로만 만들지 말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좀 보도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웬 순진한 소리는 듯 그를 비웃을 뿐이다. “어차피 100년쯤 후면 [진실 여부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한 기자가 상심하는 스미스 씨를 달랜다.

100년 후라면 어떤 이슈가 문제됐을 당시 살아있던 사람은 전부 세상을 떠났을 테니, 죽은 사람에게 어떤 일의 진실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당 이슈가 잊히지나 않았으면 다행이고, 후세대가 진실을 밝히려 해도 자료와 증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실 100년까지도 필요 없다. 요즘은 아무리 들끓던 사회적 이슈도 몇 달만 지나면 사람들이 싫증을 내고 곧 망각한다. 언론매체들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오만해진다. 대중은 어떤 사안에 집요하게 파고들 만한 시간적ㆍ재정적 여유나 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언론은 잘 알고 있다. 국민이 진실 여부를 가리지 못한다고 확신하면 언론은 나태해지거나 의도적인 왜곡 보도의 유혹에 더욱 쉽게 넘어간다. 실제로 시민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여건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사실왜곡을 포착, 교정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가 제작된 1930년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세기가 바뀌었어도 언론, 정치권, 대기업은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전성시대를 거치면서 대중이 정보체계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은 심화되었다. 그러면 어쩔 것이냐? 이것이 정확히 이 책의 출발점이며 이 책이 제기하는 핵심 논제다. 저자 댄 하인드는 엘리트 공무원의 선의와 지도에 의존하는 공공서비스 윤리론도, 자유시장만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도, 시민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특히 후자의 경우 극심한 경쟁과 효율주의로 개인을 원자화시켜 무력감에 빠뜨리고 정보와 지식에의 접근을 조직적으로 차단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해서 대안을 찾아 나선 저자가 도달하는 곳은 뜻밖에도 고전적인 의미의 ‘퍼블릭’ 즉 ‘공중’(公衆)이다. ‘공중’은 공중도덕, 공중보건 등의 합성어로 쓰이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용어이지만, 사회철학 분야에서는 이를 군중이나 ‘대중’과 뚜렷이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예컨대 존 듀이는 1927년에 발표된 역작 『공중과 그 문제들(The Public and its Problems)』(국내에는 2010년 『현대 민주주의와 정치 주체 문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에서 현대 민주정치를 구성하는 시민을 공중이라 규정하고 미국이 18~19세기에 경험한 공화주의를 기반으로 공중과 국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부활과 구성원의 활발한 자치를 통한 실체적 공중의 창조를 주장했다. 저자가 본문에서 인용하는 존 듀이의 “위대한 공동체”란 바로 이 ‘공중’을 가리킨다. C. 라이트 밀스는 한발 더 나아가, 듀이의 공중 개념을 바탕으로 엘리트층의 의사를 전달받아 수용하는 수동적인 대중(the mass)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스스로 의견을 형성해 행동으로 전환하는 공중(the public)을 구분하는 작업을 해냈다. 이렇게 공중을 호출하는 공화주의 철학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기반철학이기도 하다. 『대중이 돌아온다』는 이 개념들을 기반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원자화된 개인들과 이들을 단순히 합쳐놓은 수동적인 대중이 어떻게 하면 다시 한 번 공화주의적 공동체로서 활발한 공중을 형성하고 정치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을 격려하는 일종의 정책기획서이다. 원제를 엄격히 따르면 본서의 제목은 『공중이 돌아온다』가 되어야 할 터이나, 영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한국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공화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어 ‘돌아올 공중’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민주화 이후 파편화된 대중을 생각하며 『대중이 돌아온다』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음을 알려둔다. 여기에는 ‘대중이 돌아와 공중을 이룬다’는 의미도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공중의 형성과 공동생활의 부활을 위한 방안으로 ‘공공주문취재 제도’와 ‘공공주문연구 제도’이라는 두 가지 구체적인 정책안을 설계하고 제시한다. 이 두 제도의 골자는 일반 시민도 어떤 사안에 관하여 심층취재나 학술연구를 공식적으로 주문할 수 있도록 정보와 지식 체계를 활짝 개방하자는 것이다. 취재나 연구를 시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계획서를 제출한다. 이것을 인터넷 등 일정 매체에 공시하는 동시에 신청자들이 직접 자신의 계획서를 시민 앞에서 발표하고 옹호하면, 시민이 이를 듣고 직접 계획서에 투표해 취재 또는 연구할 사안을 선정하고 취재비ㆍ연구비를 배정한다. 그러면 결과물은 시민이 접근하기 쉽도록 주류언론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 의무적으로 실리고 내용도 시민에 의해 평가받는다. 언론개혁을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연구시스템 개혁에까지 연결해 언론과 학술이라는 두 분야를 제도적으로 연동시키는 저자의 센스는 날카롭다. 실제로 그 둘은 지식과 정보라는 면에서 긴밀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고, 시민이 학술연구에 더 쉽게 접근하거나 궁금한 사안에 대하여 학술연구를 주문ㆍ선정할 수 있다면, 내용 검증이 늘 문제되는 시민참여형 저널리즘과 소셜 저널리즘의 약점을 보완할 간접적 방편이 될 수 있다.

물론 전문가가 제출하는 연구계획서를 시민이 검토하고 연구비를 배정하게 된다면 전문가들의 저항과 시민들 스스로 이를 주저하는 상황도 예상되지만, 그것은 제도 설계의 문제일 뿐 극복 불가능한 장벽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실 배심원 제도의 경우에도 유사한 논의가 있다. 배심원 제도는 모든 시민이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기본 상식에 근거해 사건을 판단할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 운영하는 제도다. 시민이 심층취재나 학술연구를 주문하고 평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과정을 잘 설계하고 제도화해서 시민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것이냐 여부는, 결국 해당 사회에 그런 합의가 형성되느냐의 문제다. 한편, 제도권 바깥에 있는 독립 저널리스트나 학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제도를 통해 업계 진입장벽을 극복하고 직접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은 제도가 실행된다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상상이 가능하다. 예컨대 디도스 공격이나 4대강 공사의 문제점을 심층 취재한 기사나 학술적인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물을 조선일보가 의무적으로 실어야만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몇 년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닥치던 무렵, 미네르바 같은 인물이 정식으로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기사를 쓸 권한을 얻고, 각종 유력 신문과 방송이 그가 분석한 경제 동향을 의무적으로 실어야만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우리의 현실은 이런 즐거운 상상과는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다. 부실하고 편파적인 취재 속에 각종 비리가 묻히고,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며 종편이 출범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찾은 대안은 ‘나는 꼼수다’와 ‘뉴스 타파’ 같은 새로운 매체였다. 또 기자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사와 보도만을 내보내라는 경영진에 맞서 제작 거부와 파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해서 보도한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를 직접 알아내고 증명할 도리가 없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나꼼수에 당연히 환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꼼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상을 몰라 속 터지는 대중에게 나꼼수가 하나의 산소 공급기가 돼줄 수는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대중의 직접적 참여를 높이는 또 다른 정책적 수단을 고안해 병존시켜야 한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팟캐스트 같은 소통 도구는 누구의 손에 쥐어지고, 어떤 어젠다가 핵심에 놓이느냐에 따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우려도 없지 않다. 조만간 누군가 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빌려, 생활이 치여 힘든 대중을 극우적 감성으로 선동하고 반여성주의나 외국인혐오증 등을 조장해 부정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소수자에게 표출토록 부추기는 데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러시 림버, 빌 오라일리, 숀 해니티 등 미국에서 거한 입심과 도발적인 스타일로 광범위하게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라디오방송 진행자들은 대체로 극우에 속한다. 통계상 평균적인 미국인이 자가용에 앉아 출퇴근하며 듣는 방송은 이런 우파 방송일 확률이 크다. 한국에서 나꼼수가 거한 입심과 도발적인 방송진행 스타일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킨 것도 시간 문제였을 뿐 이미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런 방식을 진보진영에서만 활용하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문제 해결의 열쇠는 특정인 몇 명의 진심과 입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공동체를 형성해 진실 탐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변혁이다.

트위터가 정보소통 체계에 놀랄 만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인이 트위터를 통해 전파되는 정보의 진위여부나 신빙성의 정도를 가려내는 데는 일정한 어려움이 따른다. 최근 논란을 빚은 SNS 검열 방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그 차체로만은 정보 소통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다. 오마이뉴스 같은 시민참여형 온라인 저널리즘도 그 획기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민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검증하고 기사를 배치하는 편집자와 상근기자들에게 점차 힘이 몰리면서 기존 매체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 다음블로거 뉴스나 기타 메타블로그 서비스에 올라오는 내용들도 역시 신뢰성 확보가 가장 큰 관건이다. 댄 하인드의 발상은 새롭게 떠오른 이런 온라인 소통 수단은 물론이고 뉴스, 신문 등 기존의 매체까지도 골고루 활용해 거기다 유통시킬 질 좋은 뉴스나 연구물을 생성하되, 그 생성 과정과 결과물 평가 과정에 시민들을 정식으로 참여시키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물론 구조적 변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는 시기는 추상적인 정책안들이 구체화되면서 실현될 확률이 급속히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이 고안해왔으나 시험해볼 기회가 없던 정책안들이 갑자기 요긴해지는 순간이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면서 신선한 대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공공주문취재 제도와 공공주문연구 제도 역시 이런 시기에 채택을 고려해볼 수 있는 훌륭한 정책안이다. 아이디어가 하나라도 아쉬운 이 시기에 저자가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 충분히 실행가능성 있는 언론개혁 방안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것이 촛불시위 등에서 드러난 바 있는 우리 시민들의 주체화와 정치화를 지속적으로 심화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현 언론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뜻있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야무진 바람이 있다. 언론의 공익성과 공공성이 웃음거리가 돼버린 지금, 각자의 일상에 흩어져 있던 무명씨들이 공론장으로 귀환하여 함께 직접 언론을 탈환하고 복구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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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천전문가 베른하르트 교수 인터뷰 (한겨레 2011. 8. 21)





“운하 유사한 4대강 공사는 재난…막지 않고 뭐했나”
[한겨레가 만난 사람] 유럽 하천전문가 헬무트 베른하르트 교수


한겨레 남종영 기자기자블로그



» 18일 유럽의 하천 전문가인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 독일 카를스루에대 교수는 나흘 동안의 남한강과 낙동강 조사를 마치고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대규모 준설과 보에 갇힌 물로 인해 뛰어난 강 생태계만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16개 보를 짓고 강바닥과 둔치의 모래 4억5600만㎥를 파내는 ‘4대강 사업’이 10월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있다. 유럽의 하천 전문가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70) 독일 카를스루에대 교수가 지난 11일 방한해 남한강과 낙동강 등 4대강 사업 현장을 조사했다. 그는 12일 남한강, 13~15일 낙동강을 살펴본 뒤 18일 국회에서 열린 ‘4대강 사업의 홍수 및 재해 안정성 진단’ 국제 심포지엄에서 간략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상세한 조사보고서는 항소심이 진행중인 ‘4대강 사업 취소 소송’의 증거자료로 제출된다. 인터뷰를 위해 베른하르트 교수의 12일 남한강 조사에 동행했고, 16일 5시간에 걸친 정식 인터뷰에 이어 18일 심포지엄에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이 기간에 그가 작성한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견해’라는 문건을 받아 보았다. 민주당 고위정책회의에 전달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 “4대강 사업은 연쇄적인 대형 보 건설 계획으로 볼 때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전통적인 운하 건설 계획과 유사합니다 … 특히 저를 놀라게 한 것은 4대강 사업의 모델이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RMD) 운하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애초 ‘한반도 대운하’를 만든다고 했을 때 거론했던 게 바로 라인-마인-도나우(다뉴브) 운하였다. 세 강을 뱃길로 이은 이곳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 뛰어들기 전인 2006년 대운하 구상을 밝힌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바로 이 운하 설계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에 어떻게 관여했나?

“갑문 디자인을 설계했다. 갑문을 열고 닫을 때 일어나는 파도가 배 운항에 지장이 없도록 계산해 안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 운하는 4대강 사업의 전신인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이다. 처음부터 4대강 사업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아니다. 단순히 한국에서 강을 복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하천 기술자로서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특히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4대강 사업을 ‘그린 뉴딜’이라고 소개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사업계획서인 <4대강 마스터플랜>과 이 사업을 다룬 <사이언스> 특집기사 등 관련 자료를 구해 읽을수록 강 복원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수록 명확해졌다. 이건 지난 세기의 하천수리학이었다. 생태적 관심이나 필요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프로젝트 말이다.”


-지난 5월에는 아힘 슈타이너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한국 정부가 유엔환경계획의 긍정적인 평가를 들어 4대강 사업을 ‘하천 복원’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며 대화의 창구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슈타이너 사무총장 또한 하천수리 전문가로 대형 댐의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유럽의 댐 문제를 다룬 보고서를 만든 적도 있다. 나는 이 단체가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여 너무 놀랐다. 유엔환경계획은 정치적인 단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슈타이너 사무총장에게 토론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답장은 받지 못했다.”

‘한반도 대운하’ 모델인 독일운하 설계에 참여
현장조사 위해 방한…국제심포서 결과 발표
“보·준설방식 전형적 운하…심각한 결과 예고”

지난 12일 남한강 조사를 할 때부터 그는 도대체 이 사업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크레이지!’ ‘노 센스!’ ‘(반어적으로) 원더풀!’ 강변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면서 줄곧 이런 말을 탄식조로 내뱉었다.

이날 오전 그는 경기 여주군 신륵사 뒤편 남한강과 금당천의 합류부에 다다랐다. 이곳은 4대강 사업 반대 진영의 일종의 ‘성지순례’ 장소다. 환경단체는 역행침식(본류의 과도한 준설로 지천의 강바닥, 제방, 교각 등이 상류 쪽으로 차례로 깎여나가는 현상) 때문에 주변 금당교 교각 하단부가 깎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금당교가 보이는 합류부에 이르는 도로는 ‘접근 금지’라는 푯말과 함께 흙을 돋우어 차량 통행을 막아놓았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재밌다는 듯 사진을 찍더니 훌쩍 뛰어 금당천으로 다가갔다.

-직접 보니 어떤가?

“전형적인 역행침식이다. 본류에 과도한 준설을 하면 강은 본류와 지천의 수위가 평형을 이루려고 한다. 저렇게 하상유지공(강바닥의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돌망태)을 설치해봤자, 얼마 안 돼 쓸려 내려간다. 하상유지공은 강에 던지는 ‘농담’일 뿐이다. 콘크리트 보를 짓지 않는 한 거센 물살은 다리 교각도 부수는 힘을 갖고 있다.”

베른하르트 교수와 함께 있던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위원장이 “저 하상유지공도 세 번이나 쓸려 내려갔다”고 말했다. 교수는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계속 침식이 되다가 결국 하상유지공이 붕괴되는 그림이었다. 콘크리트 보를 세우면? 강은 다른 물길을 찾아 흘러내려간다.

이날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여주녹색성장실천연합 회원 30여명은 베른하르트 교수를 따라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베른하르트 교수에겐 “독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고, 조사에 동행한 이들을 “매국노”라고 했다. ‘6·25 유공자회’라는 조끼를 입은 촌로가 그에게 달려들어 말했다. “독일도 라인강 개발해서 선진국 됐잖아. 우리도 4대강 해서 잘살아 보려는 거야.” 교수는 다시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리며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흘 동안 둘러보니 운하라는 생각이 들던가? 왜 운하라고 생각하나?

“첫째 보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둘째 강바닥을 사다리꼴로 일정하게 준설한다는 점. 이것은 운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도 이렇게 생겼다.”

물론 이에 대해선 ‘또 운하 타령이냐’며 식상하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운하 아니고는 도저히 ‘4대강 사업의 목적’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게 베른하르트 교수의 생각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 목적으로 △홍수 방지 △용수 확보를 든다. 사업의 핵심 내용은 △대규모 준설 △16개 보 건설이다. 우선 본류의 대규모 준설은 실제 홍수위를 낮추기 때문에 홍수 방지 효과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추가로 16개 보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한다. 보에 물이 가둬지면 다시 홍수위가 높아져 준설 효과는 상쇄되고 만다. 그렇다면 왜 보를 짓는 건가? 이 질문에 대해 정부는 기후변화 시대에 생길지 모르는 물부족 사태에 대비해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보에 가둔 물을 언제 어디에 쓸지는 ‘연구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보통 정부는 ‘필요성’을 확인한 뒤 ‘행동’하지만, 4대강 사업에선 ‘행동’한 뒤 ‘필요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보로 물을 가두고 죽은 물을 용수에 쓴다고? 정말로 물이 필요하면 수질이 좋은 산악지역이나 강 상류에 댐을 지어야 한다. 이런 식의 연속적인 대형 보 건설로 많은 양의 양질의 용수를 공급하는 건 불가능하다.”

-준설로 인해 물그릇이 커지면 수질이 좋아진다고 정부는 말한다.

“물살이 있어야 산소가 공급되고 물이 깨끗해지는 거다. 그런데 보로 막힌 4대강은 유속이 느려져 산소량이 부족해진다. (물이 깨끗해진다는 정부 주장이 담긴 신문 기사를 꺼내 보여주며) 겨울철 갈수기 때도 마찬가지다. 물길이 좁아지더라도 흐르기만 하면 수질은 아주 나빠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물이 고여 있는 상태가 수질에 더 위험하다.”

4대강 지지 유엔환경계획은 정치적 단체화
사업 뒤엔 생물 사라지고 홍수 가시화할 것
“늦지 않았다…시계 거꾸로 되돌려야 한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사업이 있나?

“있었다. 단 1세기 전에. 4대강 사업은 20세기 초 (운하를 고려한) 전형적인 강 개발 방식이다. 적어도 최근 50년 동안 이렇게 연속적으로 보를 건설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럼 4대강 사업의 정체는 뭔가? 과거 하천 관리 방식의 답습인가, 아니면 운하 개조를 염두에 둔 정치적 모의인가?

“둘 다인 거 같다. 수심 4m로 준설하는 게 힌트다. 정권 초기 운하 계획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운하 만드는 게 아니라면 낙동강 최소 수심을 4m로 정할 이유가 없다. 지역별 용수 부족량에 따라 준설량과 수심을 조절하면 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에 따라 낙동강은 최소 수심 4~6m 깊이로 준설을 마쳤다. 하지만 이것은 최소 수심일 뿐 깊은 곳은 39.7m에 이른다. 평균 수심은 7.4m로, 얕은 여울과 곡류는 깊은 배수로로 바뀌었다. 물이 흐르는 저수로의 평균 너비도 기존 240m에서 420m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정도면 화물선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베른하르트 교수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은 자신의 생명을 잇는 특별한 구조를 갖고 있다. 수질 정화 효과가 있는 모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쌓인다. 습지와 수변 수림은 물을 머금어 홍수를 완화한다. 이런 강 생태계에서 다양한 생물이 산다.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은 모래 깊이 60㎝까지다. 그런데 보를 건설하면 물이 정체돼 모래가 이동하지 못하고 모래 위로 침전물이 쌓인다. 이를 ‘점토질 코팅’이라고 하는데, 모래 속 생물들은 숨을 쉴 수 없다. 홍수도 마찬가지다. 강을 직선화하고 사다리꼴로 준설하면 강 유속이 빨라져 홍수 위험이 증가한다. 예전에는 긴 시간 동안 유량이 분산됐다면 이제부터는 짧은 시간에 많은 유량이 몰릴 것이다. 올해는 보에 물을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물을 채우면 홍수 위험이 가시화할 것이다. 5~10년 뒤엔 지천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본류를 메우면서 더욱 유속이 빨라질 수도 있다. 라인강도 1880년대에 큰 홍수가 적었지만 운하화가 시작된 1977년 이후 집중적으로 큰 홍수가 발생했다.”

-4대강을 둘러보니 어땠나?

“가슴이 찢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게 죽어가고 있었다. 습지와 모래밭으로 가득 찬 4대강은 ‘물의 사막’(water desert)이 되어버렸다. 가장 아쉬운 곳은 경북 예천 내성천과 낙동강 중상류다. 작은 물고기는 얕은 물에서 살고 큰 물고기는 깊은 물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곳을 깊고 반듯하게 깎아놨다. 생태계는 교란될 테고 얕은 물에 사는 생물들은 첫 희생양이 될 것이다. 국토해양부 장관은 그렇다 치고 환경부 장관이 이 사업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난 믿을 수 없다. 생태공학적으로 재난 상태다.”

-이번 여름 몇 차례 4대강 공사 현장에서 대형사고가 났다. 환경단체는 4대강의 대규모 준설 탓이라고 주장하고 정부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한다. 지난 6월 말 낙동강 왜관철교 붕괴사고의 경우, 정부는 무너진 교각 주변을 준설하지 않았기 때문에 4대강 사업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데, 가보니 어땠나?

“왜관철교 교각이 어떤 방향으로 넘어졌는지 보라. 물이 흘러가는(하류) 방향이 아니라 흘러오는(상류) 방향으로 쓰러졌다. 준설로 빨라진 물살이 교각 상류 아래쪽 강바닥을 깎아냈다. 그러면서 교각이 충격을 받아 무너진 거다. 바로 옆에서 준설하지 않았더라도 주변 준설 지점에서 거센 물살이 강바닥과 부딪히면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켜 강바닥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그가 내성천 다큐멘터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동행한 이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16일 인터뷰에서 낙동강을 얘기하던 그의 얼굴도 갑자기 붉어졌다.

“당신들은 훌륭한 자연습지와 모래밭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을, 여태 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 파괴되고 인공공원이 되었다. 앞으로 훨씬 많은 돈을 들여 인공공원을 정비하고 재퇴적되는 모래를 파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것을 막지 못하고 무엇을 했나? 지금 4대강 생태계는 멸종시계 12시를 2분 넘겼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우리는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는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벌이는 환경단체 간부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고 한다. “16개 보는 거의 다 짓지 않았나. 올가을 4대강 사업이 완공되면 우선 수문을 열고 물이 흐르도록 놔두자고 요청해라. 그리고 그다음 토론하자고 해라. 일단 최대의 비극은 막아놓고 말이다.”

인터뷰/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베른하르트는

‘하천기술자로 자연파괴’ 후회…강 생태계 보전 앞장

독일인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70) 교수는 1968년부터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하천수리학을 연구하며 하천 정비와 재자연화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원래는 운하와 댐, 보의 홍수 위험을 계산해 설계하는 하천 기술자였다. 라인-마인-도나우(다뉴브) 운하와 파나마 운하의 새 갑문 설계에 참여했다. 독일·오스트리아·불가리아·루마니아 등 유럽의 운하와 홍수방지 설계 작업에 참여했고, 도미니카공화국의 타베라댐의 배수로, 네팔 마르시앙디의 수력발전소와 보 건설을 자문하기도 했다. 어떤 작업은 지금의 그가 보기에 부끄러운 것도 있다. 그는 “하천 기술자로 강을 파괴하는 사업에 참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회심의 계기는 한 교수를 만나고 나서였다. “하천 생물을 전공하는 교수였는데, 개인적인 대화와 토론을 이어나가면서 내가 행한 행위가 자연파괴라는 걸 깨달았다.” 유럽의 하천 관리의 대세도 바뀌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너무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의 하천 중에 자연에 가깝게 남아 있는 구간은 31%에 불과하다”며 “지금까지 파괴가 관심사였다면 이제부턴 복원이 관심사”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하천 개발과 복원 사이에서 논란이 생기면 그는 논쟁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1976년 독일 정부와 환경단체, 주민들 사이의 소송에서 라인강에 만들어진 이페츠하임 보 때문에 홍수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승소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이를 계기로 독일 정부는 더이상 대형 보를 건설하지 않고 있다. 베른하르트 교수가 4대강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한국의 전문가 못지않게 4대강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현재 라인강 상류 하르트하임 지역 등 세계 각지의 강 생태계 보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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