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돌아온다!] 옮긴이의 글: 무명씨들의 귀환
옮긴이의 글: 무명씨들의 귀환
번역하는 책에 등장하는 영화 정도는 챙겨보는 것이 역자의 올바른 자세라는 핑계로, 나는 본문에서 잠시 언급되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1939)를 아직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동네 DVD 대여점에서 빌려보았다. 미국 정치와 언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개봉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던 이 작품에는 논할 거리가 많지만 본서와 관련해 인상 깊었던 장면을 하나만 꼽아보자면 이렇다. 부푼 꿈을 안고 정치를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고 워싱턴에 왔다가 기자들의 체계적인 왜곡보도에 타격을 입고 격노한 스미스 씨는, “모든 사실을 비틀고 웃음거리로만 만들지 말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좀 보도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웬 순진한 소리냐는 듯 그를 비웃을 뿐이다. “어차피 100년쯤 후면 [진실 여부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한 기자가 상심하는 스미스 씨를 달랜다.
100년 후라면 어떤 이슈가 문제됐을 당시 살아있던 사람은 전부 세상을 떠났을 테니, 죽은 사람에게 어떤 일의 진실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당 이슈가 잊히지나 않았으면 다행이고, 후세대가 진실을 밝히려 해도 자료와 증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사실 100년까지도 필요 없다. 요즘은 아무리 들끓던 사회적 이슈도 몇 달만 지나면 사람들이 싫증을 내고 곧 망각한다. 언론매체들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오만해진다. 대중은 어떤 사안에 집요하게 파고들 만한 시간적ㆍ재정적 여유나 수단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언론은 잘 알고 있다. 국민이 진실 여부를 가리지 못한다고 확신하면 언론은 나태해지거나 의도적인 왜곡 보도의 유혹에 더욱 쉽게 넘어간다. 실제로 시민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여건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사실왜곡을 포착, 교정하고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가 제작된 1930년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세기가 바뀌었어도 언론, 정치권, 대기업은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1980년대부터 30여 년간 신자유주의 전성시대를 거치면서 대중이 정보체계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은 심화되었다. 그러면 어쩔 것이냐? 이것이 정확히 이 책의 출발점이며 이 책이 제기하는 핵심 논제다. 저자 댄 하인드는 엘리트 공무원의 선의와 지도에 의존하는 공공서비스 윤리론도, 자유시장만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도, 시민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특히 후자의 경우 극심한 경쟁과 효율주의로 개인을 원자화시켜 무력감에 빠뜨리고 정보와 지식에의 접근을 조직적으로 차단했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해서 대안을 찾아 나선 저자가 도달하는 곳은 뜻밖에도 고전적인 의미의 ‘퍼블릭’ 즉 ‘공중’(公衆)이다. ‘공중’은 공중도덕, 공중보건 등의 합성어로 쓰이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용어이지만, 사회철학 분야에서는 이를 군중이나 ‘대중’과 뚜렷이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예컨대 존 듀이는 1927년에 발표된 역작 『공중과 그 문제들(The Public and its Problems)』(국내에는 2010년 『현대 민주주의와 정치 주체 문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에서 현대 민주정치를 구성하는 시민을 공중이라 규정하고 미국이 18~19세기에 경험한 공화주의를 기반으로 공중과 국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부활과 구성원의 활발한 자치를 통한 실체적 공중의 창조를 주장했다. 저자가 본문에서 인용하는 존 듀이의 “위대한 공동체”란 바로 이 ‘공중’을 가리킨다. C. 라이트 밀스는 한발 더 나아가, 듀이의 공중 개념을 바탕으로 엘리트층의 의사를 전달받아 수용하는 수동적인 대중(the mass)과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스스로 의견을 형성해 행동으로 전환하는 공중(the public)을 구분하는 작업을 해냈다. 이렇게 공중을 호출하는 공화주의 철학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기반철학이기도 하다. 『대중이 돌아온다』는 이 개념들을 기반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원자화된 개인들과 이들을 단순히 합쳐놓은 수동적인 대중이 어떻게 하면 다시 한 번 공화주의적 공동체로서 활발한 공중을 형성하고 정치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을 격려하는 일종의 정책기획서이다. 원제를 엄격히 따르면 본서의 제목은 『공중이 돌아온다』가 되어야 할 터이나, 영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한국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공화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어 ‘돌아올 공중’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민주화 이후 파편화된 대중을 생각하며 『대중이 돌아온다』라는 제목을 사용하게 되었음을 알려둔다. 여기에는 ‘대중이 돌아와 공중을 이룬다’는 의미도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는 공중의 형성과 공동생활의 부활을 위한 방안으로 ‘공공주문취재 제도’와 ‘공공주문연구 제도’이라는 두 가지 구체적인 정책안을 설계하고 제시한다. 이 두 제도의 골자는 일반 시민도 어떤 사안에 관하여 심층취재나 학술연구를 공식적으로 주문할 수 있도록 정보와 지식 체계를 활짝 개방하자는 것이다. 취재나 연구를 시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계획서를 제출한다. 이것을 인터넷 등 일정 매체에 공시하는 동시에 신청자들이 직접 자신의 계획서를 시민 앞에서 발표하고 옹호하면, 시민이 이를 듣고 직접 계획서에 투표해 취재 또는 연구할 사안을 선정하고 취재비ㆍ연구비를 배정한다. 그러면 결과물은 시민이 접근하기 쉽도록 주류언론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 의무적으로 실리고 내용도 시민에 의해 평가받는다. 언론개혁을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 연구시스템 개혁에까지 연결해 언론과 학술이라는 두 분야를 제도적으로 연동시키는 저자의 센스는 날카롭다. 실제로 그 둘은 지식과 정보라는 면에서 긴밀한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고, 시민이 학술연구에 더 쉽게 접근하거나 궁금한 사안에 대하여 학술연구를 주문ㆍ선정할 수 있다면, 내용 검증이 늘 문제되는 시민참여형 저널리즘과 소셜 저널리즘의 약점을 보완할 간접적 방편이 될 수 있다.
물론 전문가가 제출하는 연구계획서를 시민이 검토하고 연구비를 배정하게 된다면 전문가들의 저항과 시민들 스스로 이를 주저하는 상황도 예상되지만, 그것은 제도 설계의 문제일 뿐 극복 불가능한 장벽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실 배심원 제도의 경우에도 유사한 논의가 있다. 배심원 제도는 모든 시민이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기본 상식에 근거해 사건을 판단할 능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 운영하는 제도다. 시민이 심층취재나 학술연구를 주문하고 평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과정을 잘 설계하고 제도화해서 시민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것이냐 여부는, 결국 해당 사회에 그런 합의가 형성되느냐의 문제다. 한편, 제도권 바깥에 있는 독립 저널리스트나 학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제도를 통해 업계 진입장벽을 극복하고 직접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은 제도가 실행된다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상상이 가능하다. 예컨대 디도스 공격이나 4대강 공사의 문제점을 심층 취재한 기사나 학술적인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물을 조선일보가 의무적으로 실어야만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몇 년 전 세계에 금융위기가 닥치던 무렵, 미네르바 같은 인물이 정식으로 시민들의 요청에 의해 기사를 쓸 권한을 얻고, 각종 유력 신문과 방송이 그가 분석한 경제 동향을 의무적으로 실어야만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우리의 현실은 이런 즐거운 상상과는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다. 부실하고 편파적인 취재 속에 각종 비리가 묻히고,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며 종편이 출범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찾은 대안은 ‘나는 꼼수다’와 ‘뉴스 타파’ 같은 새로운 매체였다. 또 기자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기사와 보도만을 내보내라는 경영진에 맞서 제작 거부와 파업에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해서 보도한다는 심증은 있지만 이를 직접 알아내고 증명할 도리가 없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나꼼수에 당연히 환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꼼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상을 몰라 속 터지는 대중에게 나꼼수가 하나의 산소 공급기가 돼줄 수는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대중의 직접적 참여를 높이는 또 다른 정책적 수단을 고안해 병존시켜야 한다. 게다가 현재와 같은 팟캐스트 같은 소통 도구는 누구의 손에 쥐어지고, 어떤 어젠다가 핵심에 놓이느냐에 따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우려도 없지 않다. 조만간 누군가 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빌려, 생활이 치여 힘든 대중을 극우적 감성으로 선동하고 반여성주의나 외국인혐오증 등을 조장해 부정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소수자에게 표출토록 부추기는 데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러시 림버, 빌 오라일리, 숀 해니티 등 미국에서 거한 입심과 도발적인 스타일로 광범위하게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라디오방송 진행자들은 대체로 극우에 속한다. 통계상 평균적인 미국인이 자가용에 앉아 출퇴근하며 듣는 방송은 이런 우파 방송일 확률이 크다. 한국에서 나꼼수가 거한 입심과 도발적인 방송진행 스타일로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킨 것도 시간 문제였을 뿐 이미 예고된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런 방식을 진보진영에서만 활용하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문제 해결의 열쇠는 특정인 몇 명의 진심과 입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공동체를 형성해 진실 탐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적 변혁이다.
트위터가 정보소통 체계에 놀랄 만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인이 트위터를 통해 전파되는 정보의 진위여부나 신빙성의 정도를 가려내는 데는 일정한 어려움이 따른다. 최근 논란을 빚은 SNS 검열 방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그 차체로만은 정보 소통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다. 오마이뉴스 같은 시민참여형 온라인 저널리즘도 그 획기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민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을 검증하고 기사를 배치하는 편집자와 상근기자들에게 점차 힘이 몰리면서 기존 매체의 한계를 답습하고 있다. 다음블로거 뉴스나 기타 메타블로그 서비스에 올라오는 내용들도 역시 신뢰성 확보가 가장 큰 관건이다. 댄 하인드의 발상은 새롭게 떠오른 이런 온라인 소통 수단은 물론이고 뉴스, 신문 등 기존의 매체까지도 골고루 활용해 거기다 유통시킬 질 좋은 뉴스나 연구물을 생성하되, 그 생성 과정과 결과물 평가 과정에 시민들을 정식으로 참여시키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물론 구조적 변혁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는 시기는 추상적인 정책안들이 구체화되면서 실현될 확률이 급속히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 전문가나 시민단체들이 고안해왔으나 시험해볼 기회가 없던 정책안들이 갑자기 요긴해지는 순간이다.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면서 신선한 대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공공주문취재 제도와 공공주문연구 제도 역시 이런 시기에 채택을 고려해볼 수 있는 훌륭한 정책안이다. 아이디어가 하나라도 아쉬운 이 시기에 저자가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 충분히 실행가능성 있는 언론개혁 방안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것이 촛불시위 등에서 드러난 바 있는 우리 시민들의 주체화와 정치화를 지속적으로 심화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다. 현 언론의 문제점에 공감하는 뜻있는 정치인과 시민들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야무진 바람이 있다. 언론의 공익성과 공공성이 웃음거리가 돼버린 지금, 각자의 일상에 흩어져 있던 무명씨들이 공론장으로 귀환하여 함께 직접 언론을 탈환하고 복구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
yes24 '투표하기 전에 우리가 읽어야 할 필독서' 고르기 행사(3.19~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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