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히스가 지은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의 원제목은 FILTHY LUCRE(2009 년 4월 출간)이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원서의 부제인 "Economics for People Who Hate Capitalism"을 활용, 변경한 결과물이다.

몇 달 전 출판사로부터 원서의 전자원고를(북미에서도 아직 출간이 안 된 시기였다) 받아들고 검토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근데 책 제목이 영 선명히 다가오지 않았다. filthy는 더럽다는 뜻이고 lucre는 필시 lucrative(돈이 잘 벌리다)와 어원을 공유하는 명사일 테니 "더러운 돈" 쯤의 의미겠구나 하는 건 알겠는데, 내가 궁금했던 점은 표면적인 의미보다도, 저자가 그 표현을 일부러 책 제목으로 택해야할 만한, 뭔가 그 표현에 얽힌 사연이라든가 그 표현이 쓰였던 권위있는 문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도 제목의 의미부터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겠기에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검색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Filthy Lucre"란, 돈욕심이나 이윤을 내는 행위를 부정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설파하는 성경 디모데전서 3장 3절에서 유래하는 옛스런 표현이었다.


호주판 표지

북미판 표지



개역개정성경과 그 기초인 신국제역본(NIV)에 따른 디모데전서 3장 3절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not given to drunkenness, not violent but gentle, not quarrelsome, not a lover of money)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KJV)를 펼쳐보면 같은 디모데전서 3장 3절인데도 약간 달리 적혀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관대하고, 다투지 아니하며, 탐욕스럽지 아니하고"(not given to wine, no striker, not greedy of filthy lucre; but patient, not a brawler, not covetous)

바로 여기서 filthy lucre란 표현이 등장한다. 흥미롭게도 킹 제임스 성경 버전에서는 돈이면 무조건 다 욕심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돈을 탐내지 말라고 하는 의미로 읽힌다. 즉 신국제역본과 비교할 때 커다란 차이점 하나가 드러나는 것이다.(한국어 성경은 개정개역,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등을 막론하고 돈 앞에 "더러운"이나 "부정한"이라는 형용사가 빠져있다 - 우리말 성서의 어느 것도 킹 제임스판을 따르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나는 성서 연구가가 아니므로 이런 나의 단편적인 관찰에는 물론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성서에 대해 잘 아는 분이 계시다면 이를 지적해주시면 좋겠다. 그러나 만약 나의 이해에 큰 오류가 없다면 단순히 "돈을 좋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말라"는 것보다 훨씬 더 일반적이고 금욕적인 선언으로 느껴진다. "부정한 돈을 탐하지 말라"고 할 때는 깨끗한 돈, 정당히 번 이윤은 기꺼이 취해도 괜찮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더구나 킹 제임스 성경 디모데전서 3장 3절 뒷부분에 등장하는 용어 covetous는 반드시 금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탐욕, 특히 남이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과 욕심 등을 일컫는 것이므로 직접적으로 "돈"을 언급하는 부분은 역시나 "filthy lucre" 뿐이고, 경계해야할 것은 더러운(filthy) 금전 내지 이윤으로 한정된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의 저자 조지프 히스가 위와 같은 성서 버전 간의 차이를 알았는지 여부는 알기 어려우나 그가 "더러운 이익"이라는 표현을 책 제목으로 붙임으로써 금전은 더럽고 자본주의는 악한 것으로 보는 진보좌파의 시각을 거기다 일부러 함축해 도발적인 부제와 함께 나란히 붙여놓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본문에서 저자가 이윤추구를 맹목적으로 부정하거나 부도덕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제8장 참고), 저자가 하필 부도덕하지 않은 이윤추구도 있음을 암시하는 킹 제임스판 성경에서 따온 구절 "Filthy Lucre"를 자기 책 제목으로 붙였다는 사실이 괜시리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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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시간. 뮌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독일인 선생은 뮌헨에 가본 사람이 있냐고 묻더니 손을 드는 사람들에게 뮌헨이 좋았는지 싫었는지, 그 도시에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를 질문했다. 그러자 반에서 독일어를 상당히 유창하게 구사하는 편에 속하는 60대 초반 아저씨 한 분이 자긴 왕년에 출장으로 몇 번 가봤는데 "뮌헨이 싫었다"고 상당히 직설적으로 선언했다. 학생들의 고개가 일제히 그를 향했다. 선생 또한 자못 놀라 그 이유를 물으니 아저씨 왈, "외국인이 많아서"랜다. 뮌헨 중앙역에 내렸더니 맨 터키 출신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별로 보기 좋지 않았으며, 자기가 생각하던 독일 같지 않더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게 학생시절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몇 년 지냈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도대체 뭘 배웠단 말인가. 극우들하고만 어울렸단 말인가. 본능적으로 기분 나빠짐을 느끼며 나는 도대체 선생이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하려나 싶어서 선생 얼굴을 올려다봤다. 순간 역시나 선생의 눈꼬리가 미묘하게 치켜올라가는 것이 예민해진 내눈에 잡혔다. 그러나 일본인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상당 세월을 보낸 그 선생은 직감상 그 말을 반박하는 대신 다른 데로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은 듯 싶었다. "네.. 아무래도 일본인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대도시보다는 옛날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자그마한 시골 도시가 더 독일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냥 그렇게만 말하고 넘어갔다. 독어학원이 아닌 다른 종류의 상황에서라면 딴지를 걸고 논쟁을 시작해볼만도 했지만, 민감해진 선생이 재빨리 화제를 바꿔버린 데다 내 독어도 그런 논쟁을 할 만한 수준이 전혀 아니고 ㅠㅠ, 독일에 사는 터키 이민자들을 독일 문화와 인종의 순수함을 오염시키는 불순물 정도로 생각하는(일본에 와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선 어찌 생각할지 안 물어봐도 뻔하다) 예순 넘은 인종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을 학원에서 만난 웬 한국인 여자가 한 마디 한다고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바짝 세운 날을 도로 눕혀놓고 말았다. 그래도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어물쩍 넘어가는 선생의 태도도 불만스러웠고 더듬거리더라도 나라도 한 마디 쏘아줄 걸 하는 후회도 든다. 젊은 날 독일에 교환학생도 가고 엔지니어였던 사람이면 결코 낮은 교육수준의 소유자가 아닐 텐데 생각이 기껏해야 저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걸 보면 공부의 양이나 견문의 폭이 의식수준과 정비례하는 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일본에 반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 형편없이 실망하는 날이 있다. 이날은 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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